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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강서구 박물관 탐방 2탄: 허준 박물관 & 동의 보감 허준의 고향 강서구

허준이 약방에서 앉아서 책을 집필하는 모습
허준: Photo by me

허준 박물관은 2004년 3월 23일 서울 강서구 허준로 87에 오픈했다. 가양역 1번 출구에서 1092m 정도 나오면 보인다. 박물관 입장료는 일반: 1,000원, 학생 및 군경: 500원, 통합관람 (허준박물관 + 겸재 정선 미술관) 일반: 1,300원, 통합관람(허준박물관 + 겸재 정선 미술관) 학생 및 군경: 700원으로 매우 합리적인 가격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차 또한 무료로 할 수 있어서 추운 겨울철 부담 없이 실내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된다. 개장시간은 오전 10~오후 5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무이다. 

 

동의보감과 허준

동의보감으로 유명한 허준, 각종 티비 드라마에서 잘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이번 박물관 투어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 하나가 바로 허준의 고향이 강서구라는 것이다. 허준박물관도 대한한의사협회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허준 하면 동의보감을 빼놓을 수 없다. 동의보감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우리나라 보물 중에 하나이다. 동의보감이 높은 가치를 받는 이유는 다음 5가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첫째: 기존 의서들과는 달리 실용성을 중요시하여 과학적인 입장에서 당시의 거의 모든 의학지식을 정리했다. 둘째: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나오는 약재들인 향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이용과 보급을 강조하였으며, 이를 위해 향약 중 637개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여 쉽게 이용하도록 해 우리나라 의학을 부흥시키고자 했다. 셋째: 국내외의 약 180여 종의 의서를 참고했고 실제 환자를 진료하는 의원들에게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넷째: 우리나라의 의학 수준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의학을 하나의 독립된 의학으로 간주하고 한국 의학이 중국과 대등한 전통과 수준을 지니고 있음을 주장했다는 것에 있다. 

 

허준이 유명해 지게 된 계기

허준은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하면서 그의 의술이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조선시대 선조 당시 왕자인 광해군이 두창에 걸렸는데 당시 어의 가운데 아무도 왕자의 치료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 허준이 왕자의 치료에 나서며 두창을 완치하자 선조는 허준의 공로를 인정하여 정 3품 당상관 통정대부의 작위를 하사했다고 한다. 

두창이란 급성 발진성 전염병으로 흔히 마마, 손님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주요 증상은 온몸에 발열이 나거나 부어 오르고 고름이 잡혔다가 딱지가 생기고 나중에 떨어져서 얼굴에 자국이 남는다. 두창은 전염력이 매우 강하고 역사적으로도 매우 오래된 질병 중에 하나다. 병의 위력도 매우 강해 한번 걸리면 사망할 확률이 높았으며 살아난다 해도 눈이 멀거나 얼굴에 심한 상처가 남는다. 조선시대에 우리나라 백성들을 가장 많이 괴롭혔던 질병 중 하나가 바로 두창이었다고 한다. 두창은 서양의 영국인 의사 제너에 의해 백신이 개발되었다. 제너 박사는 젖을 짜는 사람들은 두창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백신을 만들었으며 우리나라에는 19세기 말 수신사 김홍집에 수행해 일본에 간 지석영이 이 치료법을 들여와 1960년 3명이 두창에 걸린 것을 끝으로 두창은 소멸되었다. 

조선시대 의료기관: 내의원, 전의감, 혜민서(제생원), 활인서

내의원은 조선시대 왕실 전속 의료기관이었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에 보면 내의원의 위치를 확인 할 수 있다. 전의감은 조선시대 관리들의 진료를 담당하며 약제 제조 및 배급도 담당했던 곳이다. 혜민서(제생원)는 백성들의 진료를 담당했으며 의약을 관리하고 의녀들을 양성한 곳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활인서는 빈민을 구제하고 치료한 기관으로 무료로 병을 치료하고 약제를 나눠줬던 의료기관이었다. 또한 활인서는 도성 안으로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동서 활인서로 나눠 전염병 환자들을 격리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의관은 과거시험 중 잡과시험을 통해 선발되었다. 의과의 시험과목은 모두 11과목이었고 합격자 중 1등은 종 8품, 2등은 정 9품, 3등은 종 9품의 관직이 주어졌다.  의관 교육기관은 전의감에서 이루어졌으며 시험에 응시한 사람 중에는 초반에는 양반의 자제도 있었으나 점차 의과를 잡학이라 여겨 기피하게 되어 중인 출신들이 응시했다고 한다. 의관들은 상복을 착용하였으며 상복의 색은 검은 청색과 검은 녹색이 주를 이뤘다. 상복에는 사모를 쓰고 허리에는 신분에 해당하는 품대를 띠고 화를 신었다. 

 

어의는 내의원의 의관들 중에서 임금과 왕족의 진료를 맡아보는 의관을 말한다. 어의는 일반적인 의관들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뛰어난 의술을 펼쳤기 때문에 임금의 신뢰를 받을 수 있었고, 병을 치료한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받거나 당상관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허준은 종1품 숭록대부를 가자받아 그의 복장은 공작 흉배가 부착되어 잇는 아청색이 단령에 사모와 서대를 했다. 

당상관: 조선시대 관직 가운데 최고의 관직으로서 상감마마와 함께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는 정3품 이상의 자리를 말한다. 문반계는 통정대부 무반계는 절충장군 이상의 품계가 당상관이며 당상관이 아닌 그 아래 품계의 자리는 당하관이라고 한다. 

의녀 제도는 조선 태종 6년(1406)에 허도의 건의로 실시된 제도이다. 의녀는 남색 치마에 연두색 저고리를 입었으며 옷 고름에는 침통을 찼다. 또한 노란색 치마를 덧입었으며 머리에는 흑단 가리마를 사용했다. 성적에 따라 내의, 간병의 초학의 3등급으로 구분되었으며 내의 중 뛰어난 능력을 보인 2명을 내의녀로 임명하고 궁궐에 출입할 수 있게 하여 왕비나 대비 등 왕실 여성의 질병 치료에 종사했다. 

조선시대 의관, 어의, 의녀의 모습
조선시대 의관, 어의, 의녀의 모습: photo by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