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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박열]: 한번 사는 인생, 박열처럼 유쾌하게

 

출처: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2021. 12월. 요즘 나는 이준익 감독 작품에 빠져 있다. 내가 이준익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를 몇 가지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주인공의 나이는 20대

20대 막바지를 달려 가고 있지만 만 나이로 하면 (american age) 아직 20대가 3년이나 더 남았다. 작품 속 주인공을 보면서 나는 주인공의 감정에 더 이입한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마치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2.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영화는 픽션이다. 영화는 과장이다. 얼마전의 나도 이러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의 최근 작품을 보면 이와 결을 달리한다. 영화 [박열], [동주]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의 암울환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도 흑백으로 촬영했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볼 때 나는 과장되고, 재미를 위주로 하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

3.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발굴

영화[박열]속의 주인 공인 독립운동가 박열은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몰랐던 인물이다. 영화를 통해서 박열이 얼마나 유쾌하고 멋있는 캐릭터 인지 알게 되었다. 또한 그는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의 이념에 찌든 독립운동가가 아닌 아나키즘의 사상을 가진 혁명가이다. 이준익 감독은 박열이 어떤 캐릭터 인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이준익 감독 [영화: 박열]인터뷰:

박열은 아나키즘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죠. 독립운동만을 위한 민족주의보다는 범세계적인 민중의 평등성, 권력과 폭력에 대한 부당성에 대한 사상과 이념을 토대로 가지고 투쟁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흑도회라는 것으로 시작해서 불령사라는 조직을 가지고 천황 혹은 황태자를 암살하기 위해서 자신의 일상의 삶의 윤택함을 추구하지 않고 불령사 조직들이 혼신을 다해서 자신의 이념을 실천하려는 과정들이 영화속에서 보입니다.

4. 영화속 역사적 고증

영화 [박열]은 1923년 9월 1일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졌다. 일본은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 라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린다. 관동대지진 (간토 대학살)로 인한 조선인 학살 수는 약 6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러한 사건을 계기로 박열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바로 그 유명한 영화 속 재판 장면이다. 영화속 재판장면 또한 아사히 신문, 일본의 다른 신문에 실린 내용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고증을 해 만들어 냈다고 한다.

그 유명한 영화속 재판 장면: 박열이 공판 전에 요청한 4가지 요구 사항

첫째: 죄인 취급하지 않을 것 (나를 피고라고 부르지 말라)
둘째: 조선 예복을 입게 해 줄 것
셋째: 재판장과 똑같은 높이의 좌석을 설치해 줄 것
넷째: 한글로 변호하게 해 줄 것

5. 최대한 사실적 묘사

영화 속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 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배역을 실제 일본인 배우들이 출연 했다고 한다. '신주쿠양산박'이라는 연극극단이다. 이 극단을 만든 사람 또한 아나키스트라고 한다. 일본인 배우들이 외무대신, 내무대신, 법무대신, 경시총감, 총리 이런 역할을 하다 보니 일본어도 너무 자연스럽고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또한 최희서라는 배우의 연기력은 정말 훌륭했다. 다른 미디어에 노출이 잘 안된 여배우여서 극의 캐릭터에 잘 부합했고 일본어 또한 너무 잘해 일본인 배우인 줄 알고 검색해 봤다. 일본인 배우가 아닌 당당한 한국인 여배우였다. 앞으로 그녀가 연기할 수많은 캐릭터들이 기대가 된다.

영화 리뷰를 마치며 이준익 감독은 영화 [박열]을 이렇게 묘사했다.

<박열>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젊은이가 갖고 있는 순수한 신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과연 이 시대에 사는 내가, 그 시대의 박열만큼 세상을 정면으로 보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을 되묻게 해주는 영화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세상을 박열처럼 정면으로 보고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고민을 해보게 된다.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본다는 것에 대한 정의도 생각해 보게 된다.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다.

박열, 그는 누구인가?
1902년 3월 12일,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났으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사회운동가이다. 본명은 박준식, 간토 대지진 직후 대역 사건 중 하나인 박열 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된 후 1945년까지 22년간 투옥 생활을 했다. 출소 후 재일본조선거류민단의 초대 단장을 역임했다. 특이한 점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본인 여성, 가네코 후미코와 결혼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신조선 혁명론>>이 있고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했다. 정부 수립 후 이승만의 초청으로 귀국하여 한국독립당 당무위원을 지내다가 한국전쟁시 납북되었다고 한다. 박열의 고향인 경상북도 문경시의 생가 터에 박열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2012년 10월 9일에 개관되었으며 기념관 옆쪽에는 2003년 3월에 가네코 후미코의 묘소가 들어섰다고 한다. 우리나라 정부는 2018년 11월 가네코 후미코에게 일제에 저항한 공을 기려 일본인으로는 두 번째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했다고 한다.